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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희종입니다. 바쁜 시간일 터인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나눌 이야기는 과학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왜곡되고 있나 하는 것입니다. 오늘 강연 제목이 좀 거창합니다마는 일단 여기 오신 분들과 생명에 대해서 한번 좀 정리를 하고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생명은 물질인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생명체가 뭔지 정의를 말하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수의과대학에서는, 형태를 가지고 있고, 대사 작용을 해서 항상성을 유지하고요. 또 당연히 생식 작용을 통해서 자기를 복제하죠. 자손들을 만들어 냅니다. 이제 여기까지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답하는데 이 외에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화입니다. 생명체는 시간의 축에 따라 주위 환경과 관계하면서 진화해 갑니다.

그런데 미대 교수님은 “살아 있다는 건, 보고 듣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지 무슨 형태, 대사, 자기 복제, 진화냐”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정의가 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두 정의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대상을 자연 과학자들은 물질적인 측면에서 표현했다면, 예술가는 생명체의 정신 작용에 강조를 둬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대상인데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 셈이죠. 이 이야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시각으로 구성됩니다. 내가 신자유적인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내가 생태 지향적으로 바라보는가. 그것에 따라 같은 세상이지만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 이해하는 방식, 공유하는 방식이 전혀 달라집니다.

150억 년의 기다림 속에 만난 우리

다시 생명에 대해서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저희는 지금 지구상에 있죠. 지구는 우주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는 천체 물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137억 년, 대략 150억 년 전에 빅뱅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빅뱅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이 탄생하고, 한 45억 년 전쯤에 지구가 등장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포유류가 나오고, 인간이 나오고, 저희들이 여기 있어요.

그럼 우리들의 나이는 얼마죠? 사실 여러분이나 저나 나이 차 별로 없어요. 여러분이 이 자리에 계시기 위해서 여러분의 부모님이 계셨고, 또 그 부모님이 계셨고 쭉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까? 최소한 인간의 지식 내에서 150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죠. 이 이야기는 여러분과 제가 이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해서 몇 년을 기다려 왔다는 것일까요? 150억 년의 기다림 속에 만난 겁니다. 150억 년의 긴 기다림 속에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할 수 있었다는 것이기에 나와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나 다른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중한 존재죠.

그런데 생명이 소중하니까 죽는 것은 정말 우리가 피해야 돼, 생명 존중이라는 것은 되도록 살려 줘야만 한다는 것이야, 과연 그럴까요? 긴 시간의 역사 속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얼마나 놀랍냐고 얘기하면서 사는 것에 방점을 찍고, 정말 죽는 게 나쁜 것이라고 한다면, 만약 나의 선조나 나의 부모, 그 부모 등 누구도 정말 안 죽고 다 살아 있다고 가정해 보지요. 이 지구가 어떻게 될까요? 아마 그 생명체들의 무게 때문에 찌그러지거나 깨지거나 최소한 우리가 먹고 살 자원은 다 고갈될 겁니다. 결국 150억 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생명이 아름다운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생명의 죽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죽음 없이 이 생명이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생명이 생명다우려면 죽음이 아름다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종종 생명 집착을 생명 존중과 착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생명체는 무수한 관계망 속에 놓여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한 생명체도 몸안의 여러 장기가 관계를 맺어서 이루고 있고, 그 장기는 여러 조직, 세포 더 내려가면 분자 원자의 덩어리이죠. 이놈들이 관계를 맺어서 이렇게 생명체가 되는 것처럼, 생명체가 어느 집단 속에 들어갔을 적에 사회적 관계에 놓이게 되고, 또 그 사회적 생명체는 자연계 속에서 생태적 관계 속에 놓여 있어요.

여기서 생각해 볼 건 관계의 도약입니다. 이 관계성의 도약에 사실 생명의 묘미랄까 신비가 들어 있어요. 과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 다 알잖아요. 그런데 그런 물질을 그릇에 담아 놓고 기도발이 무지 센 목사님이나 스님, 신부님을 한 명씩 데려다 놓고 천년만년 기도하면 생명이 나와요? 절대 안 나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물질에서 이러한 생물학적 관계가 나올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일정 층위의 관계가 다른 층위로의 도약, 이것이 생명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사회를 살펴보면 다양한 분자들이 모여서 전혀 엉뚱한 이런 걸 만들어 내잖아요. 그걸 우리가 창발 현상이라고 그러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학을 묻는다

자, 여기서 그렇다면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생각해 보죠. 동물도 언어 사용해요. 도구, 다 사용합니다. 굳이 차이점 세 가지를 말한다면 사람은 동물에 비해서 아주 무한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망. 사자들은 배고플 때 초식동물을 잡아먹지만 배부르면 옆에 지나가도 쳐다보지도 않아요. 초식동물도 사자가 배부르다 싶으면 그 옆으로 막 가죠. 그런데 인간은 그게 아니잖아요. 인간이 동물과 두 번째 다른 점은 자신에 대한 성찰입니다. 유인원 중에도 침팬지 등은 자의식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인원이 내가 누구인가 성찰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 주어진 일상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동물은 만족은 하고, 잘해 준 대상에게 감사는 해도 자신의 일상 삶에 감사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결국 사람마다 답은 다르겠지만 저는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욕망과 성찰과 감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의 삶에는 이 세 가지가 다 담겨져 있는데 시대 정신이 이중에 무엇을 끌어내느냐, 어느 방향으로 끌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적 틀은 신자유주의죠. 1970년대 이후 무한 경쟁 속에서, 뭐 말은 멋있죠, 다 경쟁해서 되는 거지. 기업의 효율을 늘리고 어쩌고저쩌고. 그렇지만 실제 현실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삶은 더 피폐해지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소비가 미덕이 되면서 환경과 삶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릴 부분은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 기술이 과연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학 기술이 어떻게 신자유주의 시대의 바탕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지금 과학 연구는 연구비 지원이 없으면 할 수가 없어요. 실험도 해야 되고, 대학원생 인건비 줘야 하고 결국 국가나 기업의 지원 없는 연구가 불가능해요. 이러다 보니 이제는 과학이 자본과 하나입니다. 산학 협동 강조나 서울대 법인화도 이런 흐름 속에 이루어지는 거지요. 돈을 댄 측은 자신들이 원하는 연구와 결과를 내지 않는 한 더 이상 지원하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학문과 그것을 행하는 과학자, 또 이들이 속해 있는 사회라는 세 가지를 함께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가는 것이 참 많습니다.

과학은 사회 속에 존재한다

과학이 발전하는 것은 종교와 미신하고 싸워서 발전하는 게 아닙니다. 과학은 항상 그 시대의 과학과 싸워서 발전합니다. 그 시대의 과학을 전복시키고 그것의 한계를 넓히고. 그래서 과학은 자기 초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요. 과학자들은 자신이 지금 알고 있는 것, 내가 길들여져 있는 것을 낯설게 보고 끊임없이 그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돼요. 저는 유학 생활을 만 10년 넘게 했지만 제가 만난 교수들은 다 진보적이었어요. 과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고정 관념을 뒤집고, 보다 바람직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니 진보적 사유가 체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과학자는 과학 행위만 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동시에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한 사회 집단 내에서 과학 행위를 한다는 것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그만한 연구 기반 시설이나 지원 속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결과를 얻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회로 돌려줘야 되는 부분이 있는 거고, 아까 말한 것처럼 연구 결과는 사회 속에서 표현해야 될 필요가 있는 거죠.

2008년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마찬가지죠.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어요.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는 이웃 나라 멕시코도 2009년도에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타결할 때 30개월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옆 나라도 아니고 FTA도 체결하지 않은 우리가 전면 개방을 했던 거죠. 그걸 문제 삼으니까 정부는 무조건 과학적이라고 했죠. 조중동도 그렇게 얘기를 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착각하고, 저보고도 “미국산 쇠고기를 무조건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무뇌의 집단이냐.” 하지만 노무현 때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하여 국민들은 아무 소리 안 했습니다. 결국 촛불 때 당시 수입 타결 조건이 너무나 황당하다는 걸 지적한 건데. 정부의 무책임한 전면 개방을 과학으로 포장하고 그게 잘못됐다고 지적하면 그건 과학이 아니라 선동이다 그런 식으로 몰아간 거죠.

삶의 과학으로

이제는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에 대해서 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과학이라는 게 어쨌든 학문이라는 형태로 제시되는데 우리는 많은 지식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진화론’ 하면 교과서에서 긴 시간 속에 네발로 다니던 놈이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유전자 차원에서도 증명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진화론이구나. 대단하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과연 진화론이 그런 걸까?

생각해 보면 몇만 년 만에 네발로 다니던 게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변화가 생긴 거죠. 그런데 만 년이라는 것도 오늘 하루가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만 년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는 건 오늘 하루에 무언가의 변화, 점차적인 것이건 돌연변이건, 누적되어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진화론을 배웠다면 ‘아, 그렇다면 생명체인 나의 삶에서 오늘 하루의 나의 진화는 무엇일까? 내 삶의 변화는 과연 어떠한 형태일까?’라는 고민을 이끌어 내야죠. 그건 삶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살아가는 삶의 문제. 우리는 앎과 삶의 거리가 여전히 분리돼 있어요. 이것이 인간의 삶에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없을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사고방식을 거대 담론 속에 빼앗기게 됩니다.

저는 과학자로서 과학 좋아하며, 근대 과학은 분명히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사고방식입니다. “그거 비과학적이야”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미신적인 것, 황당한 것,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그런 거잖아요? 그렇지만 분명히 비과학적이라고 해도 합리적인 게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원시인들이 합리적으로 생각 안 했을까요? 분명히 그들에겐 과학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 있을 수도 없어요. 원시인들이 나름대로 자기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우리가 150억 년의 시간을 담고 이곳에 서 있을 수 있는 거죠.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적 사고 중에 특정 조건을 만족시킨 게 과학입니다. 합리적인 사유 방식 중에 특정 형태를 갖춘 것이지요. 그런 걸 문화라고 부릅니다. 과학은 하나의 문화이지 보편 객관적인, 우리들의 모든 합리적인 사유를 대변하는 그런 체계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러죠. 예를 들어 “침대는 과학입니다”. 일반인이 들으면 왠지 신뢰감을 주니까 이런 게 광고 카피로 등장한 것 아니겠어요?

이종 동물 장기 개발을 사례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장기가 부족해서 사망하는 분들을 위해서 동물의 장기를 개발해서 이용하자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국제적으로 동물 장기 개발은 공통으로 회사에서 합니다. 만들어서 이익을 남길 수 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죠.

소통하는 생명

이종 동물 장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옆길로 가 보죠. 에이즈는 원래 원숭이 에이즈 바이러스(SIV)로부터 종간 장벽을 넘어 아프리카의 풍토병이었다가 1980년대 초 미국 서부 지역을 통해서 인류계 내로 들어왔어요. 30세 이상인 분들은 태어날 적에 인류계에 있지도 않았던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말에 에이즈로 죽은 사람이 누적 3천만 명이에요. 4천만 명이 이 병에 걸려 살고 있고, 최근 매년 300만 명 정도 신규 환자가 등장을 하지요.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아직 근본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프리온이라고 하는 단백질에 의한 광우병도 원래 양의 질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양 내장을 버리다 보니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을 소에게 먹이면 증체율 등 생산성이 높아져서 양 내장 그리고 소 내장까지 소에게 먹였습니다. 그랬더니 광우병이 나오고, 오염된 쇠고기를 먹은 사람 뇌에 스펀지 모양으로 구멍이 생겨서 죽어 버려요. 이것도 종간 장벽을 뛰어넘은 거죠.

또 항생제 내성 슈퍼박테리아. 요즘 WHO에서는 항생제 내성균 때문에 죽는 게 에이즈에 의한 사망자 수를 초과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항생 물질을 만든다 해도 생명체는 적응하게 돼 있습니다. 미생물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으니 우리가 항생제를 만들어도 적응하죠. 그것이 진화의 힘이자 생명력인 겁니다. 항생제 내성을 가진 균은 항생제를 경험하지 않은 균에게 이 정보를 전달해 줍니다. 2004년 <네이처>에서 밝히고 있죠. 생물학적 위해성이라는 것은 시간이 가면서 증폭되게 되어 있습니다. 생식 작용을 했던 숫자가 늘어나고, 정보를 서로 소통하고 나누기 때문이죠.

과학을 사회로

그럼 원래 얘기 들어가 볼까요? 인간용 돼지 장기 만드는 어려움은 차치하고 성공했다 치고, 내 몸 안에 무균 돼지 장기를 넣고 살아갈 때 작년과 같이 사회 재난으로 구제역이 유행한다면, 그 구제역 균이 내 몸 안에 이식된 돼지 장기에 감염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당연히 있죠. 결국 우리는 치명적인 동물의 법정 전염병 균을 내 몸 안에서 배양하는 배양기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장기 이식하고 면역 억제제도 먹고 있는 상황에서 그놈들이 몸 안에 있는 돼지 장기만 부수고 빠져 나가겠습니까? 그건 너무 생명을 모르는 거죠. 내 몸 안에 있는 돼지 장기를 파괴시킨 동물의 법정 전염병 균은 다는 아니겠지만 그중에 한두 개는 주변 환경인 인체 조직에 적응하게 돼 있어요.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보여준 바입니다.

(미국에) 이종 장기 이식을 반대하는 시민 연합이 있어요. 물론 미국 같은 데는 개인의 자유를 굉장히 존중하기 때문에 사립 재단에서 지원하는 연구를 막지는 않아요. 그러나 호주는 개인 실험마저도 막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익이 된다 해서 세금으로 지원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과학 연구를 과학자에게만 맡기면 안 됩니다. 시민이나 사회 구성 집단 간의 합의와 검토가 필요한 겁니다. 현실적으로 과학 연구에는 사회가 지원을 하고, 돈이 들어가고 있으니까 당연하기도 하고요.

실제 사례를 하나 들어봅니다. 우리나라에서 2002년에 시작해서 10년간 국가에서 세금으로 지원하는 이종 동물 장기 개발 사업이 있어요. 2007년이 대략 5년차 되던 해였어요. 사업의 중간 평가를 받아야 했거든요. 이종 장기 사업단에서 돈을 대서 유네스코와 이화여대 생명윤리법정책연구소에 의뢰해서 시민 패널을 구성했습니다.

3주 후 이 사람들이 “현 상태에서는 인간에 대한 임상 실험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동물 장기 이식 연구에 대한 책임 있는 기구도 없이 이렇게 막 해서는 안 된다. 동물의 생명권도 생각해야 된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종 동물 장기 개발이 과연 이게 누구를 위한 연구인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굳이 동물 장기를 사용하면서까지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수백억 달러의 연구비를 들여 개발한 동물 장기를 아무도 안 산다고 그러면 투자를 할까요? 절대 안 할 겁니다. 그리고 만약 수백억 달러가 투자돼서 동물 장기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누가 살 수 있겠어요? 강남의 부자들이겠죠. 물론 먼 훗날엔 일반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 돈의 10퍼센트만 아프리카로 보내도 1달러만 있어도 일주일을 살 수 있는 사람들 다 살릴 수 있는데 거긴 한 푼도 안 갑니다. 생명 존중이라는 포장과는 달리 자본주의적 과학연구일 뿐입니다. 첨단 과학에 물든 우리들의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여기도 깔린 거예요.

사실과 진실

제가 그랬죠. 이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존재한다고. 지금 우리는 물질 문명의 후기 산업 사회에서 과학과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밝힌 지식 체계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줄여 말하면 사리이고 여기서 나오는 것이 사실(fact)입니다. 계속 발전하고 있는 지금의 과학적 사실이 100년 후, 200년 후에도 그대로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죠. 지금 우리는 이 시대 과학자들의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을 공유하고 그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실이라는 것은 특정 집단 내의 다수가 공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집단 내에서 다수가 믿으면 그게 사실이 되죠. 반면 진실은 시대나 문화와 상관없이 우리가 공감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과 진실은 많은 경우 같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세상은 진실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사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논란이 있을 때 진실보다는 사실이 이기죠(그래서 세상은 항상 억울한 거예요). 따라서 사실은 곧 힘입니다. 권력이에요. 그러다 보니 사실을 왜곡해서 힘을 발휘하고 권력을 행사하려 하는 집단들이 생깁니다. 과학자 집단도 마찬가지예요.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말이 광고 카피로 쓰인다는 얘기는 과학자 집단이 과학적 사실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권력을 부여한 거예요. 믿어 버리는 겁니다.

현실 속의 정치권력, 자세히 설명 안 해도 충분하죠? 자본 권력이나 언론, 이건 말할 것 없고요. 조중동은 진짜 너무 찌질한 것 같아요. 노무현 정권 때 쇠고기에서 뼈 조각 나와서 문제된 거 기억 나요? 그때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광우병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별 야단을 다 떨었어요. 저보고도 국회 좀 나와 달라 그래서 “뼈 조각 나오는 거 위험합니다” 얘기했어요. 한나라당 증인으로. 뼈 자체는 괜찮은데 뼈가 오염되는 도축 환경이란 그만큼 다른 위험 물질이 오염될 가능성 말하는 거기 때문에 사전 예방 원칙에서 위험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명박 씨가 딱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조중동이 다 “광우병 사라질 질병이다. 없어진다. 전염병 아니다”랍니다. 참 황당하지요.

사실을 우롱하는 과학과 언론

과학 연구라는 말이 있죠. 과학과 연구가 어떻게 다를까요? 과학, ‘사이언스’는 과학자 내부에서 합의가 된 것입니다. 연구라는 것은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 이런 저런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거예요. <사이언스>와 같이 유명한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도 5년 후 살아남는 건 10퍼센트 미만이에요. 학회지에 실렸다는 건 “이런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학자들 한번 검증해 주세요”라는 연구인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입증됐을 때 과학적 사실로써 ‘사이언스’라고 말하며 교과서에도 실립니다.

사례를 통해 과학과 언론이 사실을 어떻게 우롱하는가 보겠습니다. 지방 줄기세포 주사라고 들어 보셨나요? 자기 몸에 지방 줄기세포를 끄집어내서 키워서 주사 맞으면 모든 난치병이 다 낫는다는 겁니다. 병이 없는 사람은 젊어지고요. 강남에서 히트를 쳤고 어느 회사는 이걸로 매년 100억 원씩을 모아요. 물론 줄기세포는 많은 가능성을 지닌 좋은 연구 대상입니다만, 2010년 12월 중순에 <메디컬 투데이>라고 하는 전문 의학지에 줄기세포의 항주름 효과가 국내에서 입증됐다며 주름살 많은 아저씨 이마가 펴진 사진이 실렸어요. 기사를 살펴보니 특정 회사에서 돈을 지원해서 한 연구였는데 사람이 아니라 실험 동물을 사용한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보도된 사진은 사람의 이마였어요.

더욱이 기사에서는 입증됐다고 하고, 동물 실험에 불과한 걸 가지고 사람의 피부 노화 방지 주사 요법과 자가 줄기세포 화장품 사업에 역점을 둔답니다. 이건 언론 플레이죠. 이러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업체와 이해관계가 형성되어 있고요.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살기 좋아졌습니까? KTX타고 하루 만에 부산도 다녀오잖아요. 편리해 졌다는 건 욕망의 만족입니다. 욕망의 만족을 시켜 주는 대신 우리는 돈을 지불합니다. 과학은 잉여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 너무나 좋은 수단이죠. 그러다 보니 과학과 자본주의는 궁합이 너무나 좋아요.

다시 말하면 채워지지 않는 무한한 욕망, 성찰, 감사 이 중에 무한한 욕망이 자본주의와 만나고 그 수단으로 전락한 과학은 오만해집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처럼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는 종교적 모습이 될 때 과학은 우리들의 삶과 생명에 폭력적으로 되죠.

생명은 연대한다

여기서 폭력이 무엇인가 잠깐 생각해 보지요. 저는 바람직한 관계의 단절과 왜곡을 가져오는 게 다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관계 속에 존재하는데 인간 위주로 관계를 설정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부모와 자식, 연인 간, 혹은 집단 간의 관계가 있는데 이런 관계를 왜곡시키거나 단절시키는 것은 폭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칼을 안 드는 게 비폭력이 아니라 이렇게 단절되거나 왜곡된 관계를 바로 잡으려는 게 비폭력이죠. 어떻게 보면 생명이라는 건 그 자체가 비폭력이에요. 이 생태계는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잖아요. 존재가 비폭력이죠.

다만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폭력은 강자만의 몫이 아니라는 겁니다. 약자도 체념이나 무관심이라는 형태로 폭력을 행사해요. 체념하거나 무관심 하는 순간에 그 왜곡되거나 억압된 관계는 강화되거나 그대로 유지됩니다. 소년원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하소연은 “억울합니다. 진짜 진범은 따로 있고 나는 옆에서 때리지 않았는데 끌려왔어요.” 어떤 애가 다른 아이를 때릴 때 자기들은 그냥 주변에 서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일 대 일로 때리면 도망갈 수도 있고, 덤빌 수 있잖아요. 때리지 않고 아무 소리 안 해도 옆에 죽 늘어서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덤비거나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못 가죠. 때리지는 않았어도 폭력에 가담한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 그럴까요? 예를 들어 ‘쌍용차 사태, 그거는 그 사람들 얘기지 뭐. 나랑 상관없으니까’ 혹은 ‘우리가 얘기해도 안 될 텐데’ 이런 태도는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권력에 동참하는 겁니다. 저는 침묵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빼앗긴 자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연대하고 참여해야 됩니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님의 시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시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우리는 연계돼서 같이 가는 것입니다. 폭력은 우리들의 발톱과 머리끝까지 가득 차 있어요. 관계의 각 층위에 폭력은 개입되어 있죠. 생태적 관계에서 생태계 파괴나 동물 학대, 집단 내에서 인종 갈등, 종교 갈등, 성차별 문제. 지역 갈등은 정말 찌질한 짓거리죠. 인종 차별도 그렇고 대상을 일반화시키고 범주화시켜서 그냥 차별화합니다.

생명 존중은 관계의 문제

‘티끌 속에 우주가 있다’, ‘일각이 여삼추’. 이런 말처럼 부분과 전체가 사실은 맞물려 있죠. 생명을 진짜 존중한다는 것은 한 생명체를 볼 때 150억 년의 시간의 역사를 담고 꽃핀 하나의 작은 우주를 본다는 겁니다. 그것이 죽는다는 것은 150억 년의 시간을 담은 한 우주가 사라져간다는 걸 의미하고요. 그렇게 바라보고 생명체를 대하는 것이 생명 존중이지 무조건 죽는 건 나쁜 거고 사는 것만이 아름다운 거라는 식의 관점은 알고 보면 생에 대한 집착입니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에 대한 집착을 마치 생명 존중으로 미화시켜서 끊임없이 부를 창출해 내는 데 활용하면서 사람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지요.

인공 장기를 해서 며칠 더 살았다 이런 건 뉴스가 돼요. 그런데 이러한 것은 의사의 기록으로는 남을지 모르지만 며칠 더 산 사람의 삶의 질이라는 것은 처참하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우리의 죽음마저도 신자유주의 시대에 빼앗겼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답게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내 삶을 나답게 살고 내가 나답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 의료나 여러 가지 형태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약물로 완전히 적셔지고, 호흡기로 숨만 쉬다가 가야만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회 참여라는 부분도, 생명에 대한 이해도, 우리 가족 구성원 간의 문제도 결국 다 관계의 문제입니다. 관계의 주인이 돼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나 존재와 서로 주체적으로 관계를 맺어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사춘기 아이들하고 말 안 듣는다고 냉담해서 등을 돌리거나 부부 관계끼리 서로 뜻이 안 통한다고 서로 체념하고 무관심한 관계로 머문다면 그것은 폭력적 상황이죠.

우리들은 꼭 거대한 것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 가족 중에 힘들어하는 사람 있으면 손 한번 잡아 주고,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 있으면 얘기 한번 들어 주는 것. 또 자신의 위치에 따라서는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되거나 힘없이 착취당하는 사람 있으면 그들을 위해서 말 한번 해 주고, 손 한번 잡아 주고, 할 것 없으면 옆에 조용히 앉아 주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대자대비하고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는 서로 ‘의존적’입니다. 저는 더불어 산다는 것은 오만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라는 건 한쪽이 없어도 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생태계에서 인간이란 너가 죽으면 내가 죽어요. 생태계가 파괴되면 우리가 죽습니다. 우리는 한 구성원이에요.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빚을 지고 있는 거지요. 결국 각자의 존재 차이를 차이로 봐줄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차별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욕망을 열어야 됩니다. 욕망을 나만의 내 집단만의 이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것으로 열 때, 진실과 사실의 틈새를 바라볼 수 있는 깨어 있음만이 우리들을 너와 내가 더불어 갈 수 있는 연대의 모습으로 이끌어 간다고 봅니다. 이것이 저는 진정한 오늘 하루의 삶의 진화라고 생각해요.

생명이라는 건 진화하는 존재입니다. 진화라는 건 주변과의 관계에서 생존에 더 안정된 환경으로 가는 거예요. 초기의 생물학에서는 진화를 최선의 상태로 되는 거라고 착각했어요. 기독교의 목적론적인 시각과 결합돼 있었죠. 그러나 생명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진화라는 것은 주어진 조건에서 서로가 가장 안정된 상태로 가는 거라는 걸 알게 됩니다. 최선을 설정할 때 우리의 삶은 피폐해져요. 최선의 상태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대로 온전한 겁니다.

조셉 캠벨이 말한 것처럼 욕망은 더 큰 욕망으로 치유될 수 없어요. 신자유주의는 끊임없는 욕망의 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달리는 열차에 불과해요. 저는 그래서 끝없는 시대적 탐욕을 바로 잡기 위해 오직 열린 욕망으로, 너와 내가 함께 손을 잡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사유화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문제를 던져 보고 싶어요. 여러분 아시겠지만 예전에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백은 다국적 회사가 특허권이 있어서 굉장히 고가로 판매하는 바람에 돈이 없는 사람은 사용할 수 없었어요. 과연 생명이나 생명 자원에 대해서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게 특허권을 줘야 할까요? 과학 연구가 과학자 혼자 한 게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그 지원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서구에서도 생물 자원에 대한 지적재산권 논란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특허권을 인정해 줘야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과학이 더 발전한다. 그 혜택을 어차피 볼 거다”라는 논리가 이겨 생물에 대한 특허 인정이 수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제가 대학원 다닐 적에는 옆 교실에서 무슨 실험하는지 알고 기술 있으면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만, 지금은 서로 얘기도 안 해요. 자기들의 특허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연대하기는커녕 과학이 파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생명 과학에서부터 특허 포기 운동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과학자가 과학을 해서 어떤 특정 사항의 연구 결과를 얻었다는 건 사회의 지원이 있었다는 거고 그걸 자기 혼자 독점한다는 건 그건 착취입니다. 또 그래서 직•간접적으로 그 연구에 기여한 사회 구성원이 혜택을 못 받는다면 그건 수탈당하는 것이고요.

다른 예를 보지요. 중국에서 요즘 비아그라 수입돼서 뉴스에 막 나와요. “가짜 약이다”, “함량 미달이다” 하지만 복제약이란 것은 특허를 무시하고 약을 똑같이 만들어서 파는 거예요. 우리들은 그걸 보면서 “와, 저 나쁜 놈들.” 그러지만 실은 그건 정부의 세금과 특정 기업의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서 제도로 규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들이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다 박탈당하는 것이지요. 일단 얘기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제 얘기는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과 대답

청중: 강연을 들으며 과학자의 역할과 철학자, 예술가의 역할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영향을 받아서 이런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과학을 선택한 입장에서 과학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부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처음에는 과학이 객관•보편적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말에도 나가서 공부하다 보니 나한테는 20대가 한 번뿐인데 과학이 객관•보편적이라면 내가 안 해도 딴 사람들이 할 거거든요. 아인슈타인이 아무리 똑똑한 이라 해도 객관•보편적인 거라면 다른 이가 할 텐데 시간만 당긴 거잖아요. 그러면 다른 이들도 할 수 있는 것을 걸 왜 한 번뿐이 없는 내 인생을 허비하면서 해야 되지? 이 질문에서 사실 모든 건 시작이 됐어요.

그래서 과학이 뭔지, 창조성이란 게 뭔지 뭐 그런 것이 꼬리를 물면서 과학이 굉장히 객관 보편적인 게 아니라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듯이 과학자들은 논리라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문화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좀 더 제 생각을 계속 넓혀 가게 됐던 계기가 됐던 거죠.

청중: 수의사가 동물을 죽이면 그것도 범죄인가요?

예, 지금은 과실로 당연히 배상을 하거나 책임을 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병원에 갔지만 과실이 없어도 죽잖아요. 그런 것처럼 똑같습니다. 동물의 경우는 대부분 서로 양자 간의 합의에 의해서 마무리되는 것 같아요. 법적으로 가는 건 그렇게 많지도 않고요.

청중: 폭력과 비폭력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폭력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층위가 있어요. 육식을 한다는 것, 이 자체는 그 개체에 대해서는 폭력이죠. 사슴이 사자에게 먹힌다. 먹히는 사슴에게는 폭력이죠. 그러나 생태계 안정이라는 형태, 그 자체의 흐름이라 층위에서 보면 폭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층위를 전제하고 얘기를 해야 됩니다.

뭉뚱그려서 얘기를 한다면 한나 아렌트와 같이 우리들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에 대항하고, 우리가 연대해서 살기 위한 폭력은 합리적 폭력이라는 표현도 씁니다. 그런 것처럼 어떤 층위에 따라서, 혹은 입장에 따라서 폭력 여부는 다르게 표현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폭력은 기본적으로 어떤 형태가 폭력이다라는 말은 할 수 있지만 맥락에서는 상대적이 됩니다.

청중: 모든 생명이 거룩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도 어떤 의미에서 저는 거룩하다라는 말을 쓰고 싶진 않아요. 사실 생명은 굳이 말한다면 자연 그대로일 뿐입니다. 다만 현실에서 과연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래도 간디나 그런 형태의 비폭력 입장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합리적인 폭력을 부정하거나 그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저는 현실적인 결과로 짧은 시간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것이 근본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쪽이죠.

뒷이야기 _ 조혜원(출판 노동자)

2월 강좌는 주제가 ‘과학’이란다. 강사는 이름 정도만 들어 본 우희종 선생님. 솔직히 안 끌렸다. ‘과학? 난 그런 거 관심 없는데… ….’ 그래도 의무감으로 강좌를 들으러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우희종’ 선생님 앞에 그리고 이분이 풀어낸 ‘과학 이야기’ 앞에 완전히 무너졌다.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과학이 지닌 그 깊은 속성이 놀라워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학자는 닫히거나 머무르려고 하는 사회에 대하여 항상 전복을 꾀하는 사회 비판적 속성을 지닌다. 기존의 고정 관념을 전복해서 낯설게 보게 하는 것이 과학자의 역할이다. 학문으로서 솔직할 수 없는 과학은 이미 죽은 과학이다. 이런 점에서 과학은 문학이나 예술과도 연관된다.”

‘뭐라고? 과학이 그런 거였어?’ 깜짝 놀라서는 강좌에 팍팍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갑자기 사전에서 ‘과학’을 뭐라고 해 놓았는지 막 궁금해져서 옆에 앉은 후배한테 아이폰으로 찾아보게 했다.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과학을 이른다.’

다시 한번 이럴 수가! 나는 그동안 ‘과학’을 ‘자연과학’이라는 틀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었으니… …. 갑자기 머리가 확 열리면서 감동 비슷한 것이 밀려온다. 그제야 이 강좌 제목도 이해가 된다. 머리가 열리고 마음속 빗장마저 풀리니 들리는 모든 이야기들이 쏙쏙 들어온다. 거기에다 우희종 선생님의 조근조근 하면서도 재미난 말솜씨까지 더해지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폭력은 바람직한 관계의 단절과 왜곡이고, 비폭력이란 관계의 회복이다. 폭력은 강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약자도 ‘체념(또는 무관심)’이라는 형태로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과 비폭력을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우희종 선생님 말씀에 대한 내 형광펜 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기 위치에 따라 내 주위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 손 한 번 잡아 주고, 이야기 한 번 해 주고,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예수님, 부처님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참여와 연대야 말로 비폭력이자 곧 소통이다.”

‘연대, 연대, 연대… ….’ 그동안 입으로 숱하게 떠들어 댔던 이 말에 담긴 뜻을 이다지도 아름답게 풀어낸 적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그래서 다시금 형광펜으로 좍좍!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래서 나는 카피레프트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강좌 끝 즈음에 우희종 선생님이 했던 저 말씀을 들을 땐,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야 말았다. ‘이 강좌 그대로 다시 듣고 싶습니다. 아니, 선생님의 모든 것을 카피레프트 하고 싶습니다!’